아들이 사춘기의 정점을 지나고 있다.

자기 딴에는

이미 사춘기는 훌쩍 지난 듯,
사춘기라는 것은 초등학생이나 겪는 것이라는 듯,
짐짓 남의 이야기하듯 하지만,
사춘기라는 것이,
단순히 2차 성징의 발현으로 대표되는 신체적인 변화만을 일컫는 것이 아닌,
제대로 된 성인으로 자라기 위한 정신적 좌표를 설정하는 등의 정서적 혹은 정신적인 변화를 포괄한다고 할 때,
아들의 사춘기는 여전히 진행 중인 셈이다.

이제는 기억 조차 가물가물하지만.
스스로의 사춘기를 돌아보면,
가장 위안이 되고 준거가 되었던 것은 친구들이었던 듯 싶다.

015B의 '이젠 안녕!'이라는 곡의 노랫말처럼
"어느 차가웁던 겨울날 작은 방에 모여"
왕성한 호르몬의 작용으로 들쭉날쭉 종잡을 수 없는 몸의 변화에 당혹스러워 하면서
아직 다가오지 않은 흐릿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슴도치처럼 웅크리고 모여 앉아있곤 했다.

한 줌 밖에 안되는 경험과 지식으로 세상의 모든 일을 짐짓 확고하게 정의했지만,
헤어져 집으로 돌아올 때 그것은 다시금 미심쩍은 것이 되면서 오히려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키곤 했다.

니체를, 갈매기의 꿈을 그리고 토스토예프스키를 읽었지만,
미래는 여전히 안개 속이었고, 발 딛고 있는 현실은 '저 참담한 1980년대 초입'이었다.

그때 내게,
처참할망정 삶의 진솔한 모습을 일러줄 스승이 있었으면,
더 넓은 세상이 있음을 일러 줄 선배가 있었으면,
눈 앞의 상황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우공이산의 우직함을 일러 줄 스승이 있었으면,
현재의 모습이 조금은 달라져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고 했거니와,
스스로 주변을 스승과 사표를 삼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스스로의 모자람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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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무원려필유근우(人無遠慮必有近憂) - 사람이 멀리까지 바라보고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반드시 곧 근심이 생긴다.

안중근 의사의 기개를 흔히 말하지만, 이 글에서는 오히려 그 분의 전략적인 - 요즘 이야기로 - 모습을 발견할 수 있고 "동양평화론" 등 그 분의 사상 또한 바로 이 자세에서 비롯되었다고도 유추할 수 있으리라.

항상 준비하고 깊이 생각하고 또 행동에 옮기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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