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 평전
▶ 총을 든 ‘간디’
유교적 교양을 쌓은 인문주의자이자 공산주의 혁명가이며, 베트남 독립을 설계하고 프랑스와 미국에 대항한 투쟁에서 승리한 민족 지도자. 20세기 국제정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정치적 인물 가운데 한 사람. 죽은 지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는 불가사의한 존재.
호치민의 삶과 경력은 신화 속에 가려져 있으며, 지금까지 그토록 중요하면서도 자신을 철저히 감춘 이 인물에 대한 본격적인 전기는 나온 적이 없었다. 이제 마침내 베트남 문제의 세계적 권위자가 최근에 공개된 정보와 문서들을 끌어들인 탁월한 전기를 펴냄으로써 이 빈 부분을 메우게 되었다.
남베트남 대표와 악수하는 호치민
호치민은 인간해방을 열망한 공산주의자이자 조국의 독립을 위해 지치지 않고 투쟁한 민족주의자였으며, 국제정치의 복잡성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줄 아는 냉철한 현실주의자였다. 듀이커는 그가 전쟁을 피하기 위해 모스크바, 베이징, 워싱턴과 끈질기게 협상함과 동시에 이 세 강대국의 반목을 교묘하게 이용하던 과정을 밀도 높게 재구성하고 있다.
철저한 조사에 바탕을 둔 객관적이고도 매혹적인 이 평전은 우리 시대의 가장 우뚝하고 신비스러운 인물, 영감과 혼란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의 계시적인 초상화이다.
1965년 7월 16일 ‘TIME’지 표지에 등장한 호치민
저자인 윌리엄 J. 듀이커는 베트남에 관한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역사학자이다. 그는 1960년대 중반에 해외 파견 장교로 사이공 미국 대사관에서 근무하다 호치민이란 신비로운 인물에 매혹됐다. 그 후 거의 30년 동안 베트남과 중국, 러시아, 미국에 있는 문서 보관소를 뒤지고 수많은 관련자들을 인터뷰한 끝에 호치민에 관한 엄청난 양의 새로운 정보를 수집했다. 《호치민 평전》은 이 기나긴 조사, 연구의 총체적 성과물이다.
호치민 평전
▶ 자유를 향한 열렬한 갈망, 인내와 투쟁의 화신
1890년, 청빈한 삶을 고집했던 총명한 유학자의 아들로 태어난 호치민은 유교적 소양을 쌓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21살 때 프랑스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 활동으로 수배령이 떨어지자, 조국 인도차이나를 떠나 여객선의 요리사 보조 노릇을 하며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세계 곳곳을 떠돌았다.
이 시기에 훗날 호치민의 혁명적 삶의 초석이 놓이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과 그 후의 격동하는 시기에 그는 런던과 파리에서 정원사, 청소부, 하인, 사진 수정사 등 다양한 허드레꾼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한편, 국제 공산주의 조직에서 반식민주의 투쟁의 대의를 알리기 위해 열정적으로 일했다.
홍콩 감옥의 수감생활 이후(1932년 12월) 수척해진 호치민의 모습에서
그의 감옥생활이 어떠했는지 짐작할수 있다. 그는 1934에야 모스코바에 당도한다
듀이커는 호치민이 베트남 공산주의 운동의 지도자로 비상하는 과정, 쉰 번이나 이름을 바꿔가며 혁명을 배우고 선전하던 세월, 수감과 아슬아슬한 탈출, 조국의 초대 주석으로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극심하게 분열되곤 하던 동료들을 화해시키고 그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던 모습을 놀라울 정도로 세밀하게 그려낸다. 또한 디엔 비엔 후, 텟 공세를 포함한 중요 전투의 기획에서 호치민이 담당했던 역할을 살핀다.
디엔 비엔 후 전투를 승리로 마감할 전략회의를 주도하는 호치민
▶ 역사상 미국과 맞서 승리한 유일무이한 지도자
유고의 티토, 리비아의 가다피, 쿠바의 카스트로, 칠레의 아옌데…… 이들은 모두 제3세계의 위대한 지도자들이지만 이 가운데 아무도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에 대항하여 승리한 사람은 없었다. 오직 호치민 만이 일대일로 맞붙어 승리를 거두었다. 그는 전쟁을 통해 제국주의 침략을 꺾고 조국 해방을 이룩한 유일한 제3세계 지도자이다.
1964년 하노이에서 쿠바정부 방문단과 함께한 호치민
1975년 4월 30일, 소련제 북베트남 탱크들은 사이공 시내로 진입했다. 황금별이 박힌 독특한 철모를 쓴 탱크 위의 병사들은 임시혁명정부 깃발을 흔들었다. 대로를 통과하여 대통령 관저에 이르러서는 그대로 철문을 뭉개고 들어가서는 관저 지붕 위의 베트남공화국 기를 내리고 빨간색과 파란색이 어울린 임시혁명정부 깃발을 올렸다.
4월30일 오전 11시 정각,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제1대대 소속 탱크 다섯대가 철문을 부수며 대통령궁에 진입했다. 바로 그 시각 남베트남의 즈엉반민 대통령과 부반머우 총리가 이끄는 내각의 국무위원들은 대회의장의 소파에 앉아 남베트남 임시혁명정부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1975년 4월 30일, 해방군들이 대통령궁을 에워싸고 있는 가운데
대통령궁 안으로 진입하고 있는 탱크
해방군이 들어서자 즈엉반민이 일어서서 말했다. “당신들이 왔군요.” 그러고는 항복 각서에 서명했다. 이것이 남베트남 정권의 최후였고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의 종말이었다. 사이공 거리에는 메가폰을 든 베트콩들이 나타나 외치기 시작했다. “사이공은 해방됐다. 겁내지 마라.”
1975년4월30일 오전 11시, 북베트남의 월맹군이 남베트남 사이공의 대통령궁 회의실로
들어닥치는 순간. 남베트남 임시혁명정부를 기다리고 있는 즈응 반 민 대통령(가운데)과
부 반 머우 수상(오른쪽), 응웬 반 후옌 부통령(왼쪽서 두번째)
즈응 반 민 내각의 국무위원들이 회의실로 들어온 해방군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에서 첫번째가 응웬반하오 부총리, 두번째가 부이 뜽후언 국방장관
해방군 병사 한명이 남베트남 대통령 경호대 병사들을 지키고 있다
이렇게 해서 기나긴 베트남 전쟁은 베트남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1954년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뒤, 베트남에 개입한 미국과 10여 년에 걸친 전쟁을 치르면서 베트남인은 100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내며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결국 그들은 미국을 몰아내고 남북을 통일하는 데 성공하였다.
호치민의 시신이 안치된 추모관 - Ho Chi Minh's tomb, Hanoi
공산주의자들이 사이공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베트남노동당 지도자 레 두안과 그의 노련한 동료들의 결의와 뛰어난 능력 덕분이었다. 또한 북베트남 군대와 베트콩 게릴라들도 그들 못지않게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한 인간의 비전과 의지와 지도력 덕분이었다. 그는 베트남공산당의 창건자이고, 혁명 운동의 지도자이고, 종전 6년 전인 1969년에 사망한 주석 호치민이었다.
1946년 프랑스 대통령과 악수하는 호치민
호치민은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 실용노선을 추구한 탁월한 외교가였으며, 기회만 된다면 힘이 아니라 설득으로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지도자였다. 타협을 하려는 그의 태도 때문에 적들은 무장을 해제했고, 그는 군사적 약점을 정치적 이점으로 바꿀 수 있었다.
동시에 소박하고, 착하고, 사심 없다는 이미지는 엄청난 호소력을 발휘하여, 국내외에서 심지어는 적국인 미국에서까지 베트남 혁명과 독립 투쟁에 대한 광범위한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의 존재가 없었다면 이 전쟁은 실제와는 매우 다른 사건이 되었을 것이고, 매우 다른 결과들을 낳았을 것이다.
손수 타이핑한 편지와 문서로 세계의 여론을 이끌었다
▶ 절반은 레닌, 절반은 간디
'호'는 당의 창건자이고 나중에는 베트남의 주석이었을 뿐 아니라, 영감을 불어넣는 최고의 상징이었다. 호치민은 빈틈없는 전략가이자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일 뿐 아니라 재능 있는 조직가로서, 반은 레닌이고 반은 간디였다. 호치민은 그 둘을 역동적으로 결합한 인물이었다.
모스크바 코민테른의 요원이자, 국제 공산주의 운동 참여자, 베트남 승전의 기획자로서 호치민은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적 인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동시에 그는 여전히 가장 큰 수수께끼에 싸인 인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그는 그늘 속에 감추어진 인물로, 그의 목적과 기록들은 오래 전부터 논란을 일으켜왔다.
윌리엄 J. 듀이커가 책 전체를 통해 초지일관 파고드는 쟁점은 호치민이란 인물에 대한 성격 규명이다. 그는 민족주의자인가 아니면 공산주의자인가. 성자 같은 그의 소박한 이미지는 진짜인가 아니면 단순한 책략인가.
호의 지지자들에게는 혁명적 인도주의의 상징이며, 동포의 복지와 전세계 피억압 민족들의 해방에 헌신하는 아저씨 같은 인물이었다. 미국의 정책을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호치민은 베트남 독립 투쟁을 지도하는 소박한 애국자이며, 제3세계 전체를 대표하여 제국주의에 강력하게 대항하는 인물이었다.
반대파들은 호치민이 오랜 세월에 걸쳐 요시프 스탈린의 요원이었던 점을 지적하며, 그의 애국적 동기에 의문을 제기했다. 호치민이 열심히 만들어놓은 민족주의 이미지는 대내외로부터 혁명적 대의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한 책략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호치민을 둘러싼 논쟁은 민족주의, 혁명, 평등, 인간 자유를 추구하던 시대인 20세기의 중심 쟁점들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호치민의 성격의 복잡성은 시대의 복잡성을 반영한다. 그는 전후 베트남에서 여전히 강력한 힘을 유지하고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동시에 틀림없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을 것이다.
호치민이라는 인물은 근대 사회의 중심적인 힘 두 가지를 반영하고 있다.
하나는 민족 독립에 대한 열망이며, 또 하나는 사회적, 경제적 평등이다.
그는 인간의 평등한 삶을 염원한다는 점에서 진지한 사회주의자였으며, 동시에 무엇보다도 민족 전체의 해방을 열망했다는 점에서 의심할 수 없는 민족주의자였다.
저자는 신비에 감싸인 호치민이란 인물의 객관적인 모습에 접근하기 위해 필자 나름의 해석은 최소한으로 자제하면서 사실들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이런 방법이 호치민의 삶의 극적인 성격과 그의 삶이 베트남과 20세기의 역사를 형성하는 데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제대로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판단으로. 결국 우리는 위대한 정치적 인물에 대한 가장 객관적인 전기를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