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새벽.

강가로 간다.

주변엔 벌써 감자 캐는 인부들의 움직임으로 수선스럽고, 미처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강은 새벽 한기에 몸을 털며 자욱하게 물안개를 쏘아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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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구세요?

물안개가 묻고 있다.

어쩐지 집에서 너무 멀리 떠나온 듯 아련한 느낌.


나는 누구일까?

여긴 어디일까?

나는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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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하늘로 날아가는 빛깔 고운 새가,

물푸레나무를 흔들며 지나는 바람이,

바람에 살랑 흔들리는 풀이,

풀잎에 내려 앉은 이슬이,

내게 묻는다.


당신은 누구세요?


산막 매실농장의 푸르탱탱한 매실도 묻고,

숲속 깊숙히 한적한 곳에 숨듯 파묻힌 절집 비구니도 묻는다.


당신은 누구세요?

당신은 어디로 가시나요?


나도 모른다.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다만 난 내가 떠나온 곳과 가야할 길은 알고 있다.

In My Memory

2009/06/24 21:11

주위가 조용하다. 오늘 이 순간만 그런 것도 아니고 매일매일이 조용하다. 산새나 개구리 울음이야 귀청이 떠나가라 울려대지만 그런 자연의 소리는 어느 순간 하얀 재처럼 전혀 의식 바깥에 머물고 의식 안쪽의 소음 역시 청명한 하늘처럼 여유롭다.

주변 사위의 고요함 때문인지 어쩐지 두레박에 올라앉아 심연처럼 깊디깊은 우물 속으로 내려가듯 밤이면 마음자락은 한없이 깊은 가슴 속 어느 장소로 침잠하곤 한다.

마음 속 우물 안.

고요함 속에 쪼그려 앉아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마음 안쪽을 들여다보면 언제나처럼 푸른 슬픔이 출렁인다.

아쉬운 날들, 서글픈 날들, 부끄러운 날들, 분노에 떠는 날들 - 이제는 사무치게 그립다.


언제부터인가 사업 상 자리가 아니라면 선배들과의 자리를 피한다.

선배들은 대개 나보다 연배가 높은 50대인데 함께 한 자리에서 그들은 항상 현재의 푸념을 그리고 지나간 사연을 이야기한다.

집안에 대한, 아내에 대한, 자식에 대한, 직장에 대한, 상사 혹은 부하직원에 대한 푸념과 철없던 시절의 무용담과 귀동냥으로 들은 이야기들을 자신의 직접 겪은 양 허풍을 양념처럼 섞어 과거시제로 이야기한다.

"이봐! 아직 창창하잖아! 푸념 그만하고 과거 얘기도 그만하고, 가슴 속에 담아둔 미래와 은밀하게 혼자만 간직한 꿈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라구!" 라고 소리쳐 주고 싶다.

그 자리가 술자리라면 별로 술도 못하는지라 설핏 술에 취해 그렇게 고함지르며 술주사를 늘어놓을까봐 선배들과의 술자리에 끼어들기가 부담스럽다.


반동일까...........후배들과 더 자주 어울린다.

그들의 꿈을, 때로는 격려하고, 때로는 핀잔한다. 그래도 즐겁다.

그들이 젊어서가 아니라 퀘퀘한 과거 얘기가 아닌 현재진행형 혹은 미래의 이야기이고 푸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혼자 어둠 속에 앉아있으면 과거의 일들이 활동사진처럼 눈 앞을 지난다. 나이가 들어가는 증거인가..........

과거와의 결별

2009/06/18 23:41

여러 해 동안 사업을 하다보니 세월이 지난 뒤에 내 곁에 쌓여있는 것은 각종 서류 더미.

그것들은 개인의 추억이 오롯이 담긴 종류가 아니라 사무적이고 딱딱한 종류가 대부분이다. 소송을 당하거나 소송을 건 서류도 있고 압류를 당하거나 압류를 한 서류도 있고 모임참석을 독려하는 안내문도 있고 청구서와 고지서도 있고........어느 것 하나 추억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것은 없다. 

돌아보면 누군가에 의해 뜯어먹히고 누군가를 뜯어먹고자 했던 부질없지만 부단했던 시도들.

서류를 들춰볼수록 어쩔 수 없는 아쉬움과 분노가 슬며시 마음 속에 차올라온다.

왜 그런 판단을 했을까 혹은 왜 저렇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종류의 회한이나 미련이 많아져 서류와 함께 그것들까지 모두 함께 불 속에 밀어넣는다.

몹시 더운 날이었지만 훨훨 타오르는 서류더미 앞에서는 그닥 뜨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환골탈태.......불꽃을 보면서 그 낡은 말이 떠올랐다.

불길 속에서 모든 것이 재가 되어버리듯 나와 악연으로 맺어진 모든 이들을 마음 속에서 지운다.

악연이든 선연이든 나와 인연이 된 모든 이들이 점점 험난해져가는 이 세상을 무탈하게 건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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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은 구 자체로 강력한 주술적 마력을 지니고 있는지 난 언제나 불 앞에 서면 기분이 야릇해진다.

그 야릇함에 몰입하느라 어린시절 불도 여러차례 내 보았고...........어쩐지 전생에 나는 조로아스터교 신자였나보다.

중원(中原)에 서다

2009/06/18 23:28

충주로 내려온지 꼭 한달이 지나고 있다. 앞가림하느라 거의 주변을 둘러보지 못했다. 오가다보면 명승고적 혹은 유적지를 나타내는 갈색 안내판을 수도 없이 많은데 딱히 들여다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충주 시내로 몇가지 물품을 사러 가는 길에 바로 국도변 한켠에 자리한 중원고구려비를 둘러 보았다.
中原高句麗碑.
고구려가 한반도 남쪽 깊숙한 곳까지 진출했었다는 확실한 증좌.

작지만 단정하게 치장된 공간에 그 비는 놓여있었고 주차를 하고 비각 가까이 다가가자 그늘에 앉아있던 노인이 후다닥 앞을 막아서며 중원고구려비에 대해 설명해 주겠단다. 연두색 조끼를 걸치신 모양이 공공근로 중이신가 보았다. 땡볕에서 잔디를 고르거나 휴지를 줍는 것보다는 괜찮아 보이는 보직.

노인의 설명을 들으며 유심히 살펴보니 중원고구려비는 국보 205호. 대한민국 국보 205호 옆에서 노인은 공공근로를 하고 누군가는 댓자로 누워 잠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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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공사장 인부들이 그늘에 누워 오수를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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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하고 야무진 비석

실제 비석 자체는 그리 크지 않으나 단정하고 매끈한 모습이었고 항간에 냇가에서 아녀자들이 빨래판 대용으로 썼었다는 이야기는 과장된 것이란다. 아무튼 이런 유물들을 볼 때면 어쩔 수 없는 경외심이 생겨나곤 한다.

한때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심취했었다.
그녀의 지나친 로마 취향 때문에 과장되고 미화된 감은 있지만 어쨌든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인간 군상에 매혹되어 6차례인가 반복해서 읽었었다.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고대 로마 유적지 탐방을 위시리스트에 넣고는 언젠가 Leptis Magna의 줄지어 선 기둥아래를 거닐리라는 은밀한 소망을 키우고 있다.

그 열주식 기둥 아래에서도 이 경외감을 느끼게 되리라.

농촌 공동체의 복원과 발전

2009/06/18 09:45

이미 해체 양상을 보이고 있는 농촌공동체는 더 이상 어찌해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다.

아무런 희망도 없는 난파선처럼 노인들만 모여있는 농촌은 겉으로는 초록빛으로 풍요로워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빈껍데기에 불과하고 농촌의 풍요로운 미래를 약속하던 정부의 그 많은 장밋빛 정책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분노를 넘어 허탈할 지경이다.

추수철을 앞두고 있는 감자밭 3백평에서 거둘 수 있는 감자수확량을 대략 100 상자 정도로 보고 1상자 당 계약재배로 받는 금액은 상자 당 5천원이다. 이를 계산하면 대략 55만원이 되는데 감자 수확에 이르는 기간이 120일 이고 보면 실상 이들이 감자로부터 얻는 실제 소득은 고작 1개월에 13만원 남짓에 불과한 셈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셈을 하다보면 기껏해야 농촌 가구당 월소득은 1백여만원 이하에 불과할 터이고 농사를 짓느라 구입한 각종 농기구나 농자재 등의 필요경비를 제하면 이건 도무지 계산을 하기가 민망한 수준이 되고 만다.
따라서 농사짓기보다는 다른 농가나 도로공사판 등에서 품을 파는 편이 농산물 생산에 의한 수입이 뻔한 시골 형편에서는 더욱 긴요하다고 할 수 있다.
농촌이 토목건설족들의 놀이터로 전락하고 보수반동의 골수지지자가 된 것은 모두 이런 이유 때문인 듯하다.

어쨌든 농촌을 살리고 농촌공동체를 복원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반드시 생태적이어야만 한다고 판단한다. 이에 대하여 많은 이들이 고민하고 있는 바이지만, 공동체 중심 그리고 네트워크화에 의하여 실현되어야 하지 않을까 설핏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과 판단은 나 혼자 만의 생각은 아니고 농촌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마음에 둔 사람은 대개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우석훈이 여러 저서에서 그런 생각의 일단을 드러내고 있고 김종철이 그렇다.

스스로 시골로 내려 온 사이비 귀농의 주된 이유와 명분이 그것이다.

어쨌든 사람은 자신이 세운 올바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각자 발 딛고 선 자리에서 발버둥쳐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속한 도시와 또 내가 속한 농촌 사이에 공고하게 돈이 흘러다니는 파이프라인을 놓는 것 - 그것이 내가 사이비귀농을 결행한 주된 이유이고 그 소망이 완성되는 날, 나는 비로소 완전한 귀농을 하게 될 것이다.

오디가 징그러워지다

2009/06/17 11:07

지금은 고층아파트가 숲을 이루고 있는 잠실은 아직까지 그 사연이 지명에도 남아있는 것을 보면 옛적에는 누에농사를 많이 지었나 보다.
누에의 먹이가 되는 뽕나무를 대학 때 설악산 등반을 하다가 처음으로 보았었다.
나뭇잎 모양이며 생김새도 기억 나질 않지만 새까만 그 열매의 달달한 맛은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다.

거처 창문 바로 곁에 커다란 뽕나무가 자라고 있다. 반짝이는 잎새와 결 고운 가지의 뽕나무는 신록에는 더 없이 어여쁘더니 5월을 지난 어느 날부터인가 어린 아이 손가락만큼 도톰해진 뽕나무 열매 오디가 맺히기 시작했고 6월이 되어서는 농익은 오디가 작은 바람결에도 후두둑 우박처럼 떨어져 내리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나무 아래 무더기로 떨어져 사뭇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달디단 오디 과즙향을 맡고 모여 든 온갖 새와 곤충들이 무리를 이루어 창밖에서 서성인다.
가지에 매달려 오디를 쪼아대는 많은 산새부터 그 새들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했다며 마구 신경질을 부리며 달려드는 까치까지.
땅에 떨어진 오디 과즙을 맛보기 위해 개미들까지 줄지어 섰고 이제는 파리까지 마구 꼬여드는 심각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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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것도 때로는 부담이 된다

이 인근에는 예로부터 뽕나무가 많았다 한다. 산책길에도 자생 뽕나무를 여럿 보았는데 정작으로 누에농사를 짓는 곳은 볼 수 없다.

어쨌든 이제는 골치거리가 된 오디를 주워 오디주나 담가 친구들에게 보내야겠다.
오디주는 복분자주랑 그 맛이 비슷하다고 하는데......오디의 달달한 맛이 응축된 오디주는 실제로 어떤 맛일지 궁금하다.

그래서 오디주를 담그었다.

외관을 헐렁해도 맛은 기대해도 좋을 듯.........희망사항이지만........

좋은 벗이 오면 도란도란 이야기나누며 허접하지만 나름 정성스러운 한 잔을 기울여도 좋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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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를 모자이크 처리해야 하나?

안타까운 시골 모습

2009/06/14 22:42

3주 조금 넘게 시골에 머물렀더니 시골사람들의 살림살이며 그들이 붙들고 있는 현실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아주 적은 이익이나 손해에 이웃 간 정리마저 무심하게 내팽겨쳐버리는 그들의 모습이 낯설어 보이기도 하고 어쩐지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 『도그빌』을 보듯 정체불명의 괴이함과 잔임함도 느껴진다.

아무래도 농사라는 일이 일종의 자유업 같은 것이어서 시간 배분이 자유스러워 그런 것인지 이웃 간 사생활에 대한 관심이 도를 지나쳐 가히 민폐에 가깝고 도시의 익명성에 이미 익숙해진 내게 이것은 굉장한 불편함일 수 밖에 없는데 어쨌든 적절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인듯 하다.

또 한가지 특이하게 느껴지는 것은 술의 일상화라고나 명명할 수 있을 음주습관이다.

매일같이 때를 가리지 않고 술을 마시는데 술기운으로 농사짓는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많은 양의 술을 마셔댄다. 일상이 팍팍해서인지 미래에 대한 소망이 적은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부실한 안주를 앞에 하고 이웃에 대한 험담과 세상에 대한 원망 그리고 자신의 계급에 대한 어떠한 자각과 고민도 없는 정치적 의사표현이 무성하다. 덧붙여 거기에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는 패배의식과 무기력함은 계몽주의적 접근이나 참견에 대한 우석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끼어들고 싶은 생각을 마구 솟구치게 만든다.

흔히 농촌 총각들의 결혼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이야기되는데 이들의 생활습관이나 행태를 옆에서 지켜보면 농촌 총각과의 결혼을 기피하는 것이 정작으로 여자들의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아무런 문제의식이나 해결방안을 스스로 찾지 못하는 농촌 총각들 자체가 문제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말이 농촌 "총각"이지 정작 그들 중 태반은 이미 50대 중반이다. 총각이라는 어휘가 선사하는 젊다라는 뉘앙스를 정면으로 배반하고 있는 셈이다.)

이미 농촌의 표면적인 생활수준과 생활환경은 1970년대의 그것을 벗어나 여느 도시가구와 비슷한데 거기에 맑은 공기와 쾌적한 자연환경이 더해져있으니 농촌 총각들의 결혼문제는 그들 자신의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이는 안타까운 마음에서 비롯된 지극히 편파적이고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고 가장 주요한 것은 바로 도시민과의 소득 및 문화 격차와 이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 시스템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온 국민이 나서서 장기적으로 그리고 구조적으로 해결해야할 바이고 어쨌든 그들의 생활습관은 마땅히 고쳐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해하기 어려운 생태마을

2009/06/13 15:07

생태적 관심은 이제 막연한 동경 혹은 바램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지니고 다양한 모습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호주 크리스탈 워터즈의 퍼머컬쳐 개념을 본 딴 <이장><산너울>을 작년부터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크리스탈 워터즈는 도시형 생태마을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인데 이곳의 기본 철학이 퍼머컬쳐이고, 이를 차용하여 대한민국화(?)한 곳이 <산너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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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에서 주도적으로 추진한 서천군 생태마을 <산너울>

<산너울>을 직접 방문하거나 혹은 <이장>의 설명을 들음도 없이 이렇게 이야기 한다는 것이 다소 억지스럽긴 하지만, 맨처음 이곳 사진을 보았을 때, 다소 황당한 느낌이 들었다.

첫째, 규모의 문제.

크리스탈 워터즈와 대비해볼 때 우선 규모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참고로 크리스탈 워터즈는 대략 78만평(640에이커) 정도가 되고 <산너울>은 9천평 정도가 되는데 규모가 크다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겠지만 적절한 공용공간의 확보나 향후 공동체 사업전개를 위하여 전체 규모가 어느 정도는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이다.

둘째, 개별 주택의 몰개성과 비생태적 설비.

어떠한 사전 정보도 없이 조감도와 위 사진을 지인들에게 보여주었을 경우 거의 모든 이들의 반응은, "북한이냐?"라는 것이다.
사진의 집들과 배치가 흡사 북한의 선전용 주택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이는 <산너울>의 외관이 그만큼 몰개성이라는 얘기인데, 크리스탈 워터즈의 경우 개별주택들이 굉장히 개성적이고 다채롭다는 것과 비교하면 '대한민국적'이라는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또한 <산너울>의 어떤 집 보일러실 사진을 보았는데, 석유보일러를 위한 커다란 연료통이 있었다. 살둔 제로에너지 하우스를 기억한다면 이는 역시 비생태적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셋째는 소프웨어적인 문제로, 도대체 <산너울>에서 무엇으로 호구지책을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크리스탈 워터즈의 경우 도시형 생태마을을 지향하여 입주민들은 주변 도시에서 일을 하고 크리스탈 워터즈로 퇴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산너울> 역시 그러한지?
그것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없지만 만약 그러하다면 서울로부터의 거리가 대략 230여 km에 달하고 인근에서 가장 큰 도시인 대전으로부터는 100여 km에 달하는데 이는 출퇴근하기에는 너무 먼 거리가 아닌지.

만약 크리스탈 워터즈와 다른 정주형 생태마을이라면 도시민들을 한데 모아 마을을 만들어 도대체 무슨 호구지책을 마련하라는 것인지? 전혀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대도시로부터 100여 km 떨어진 시골에서 뭘 할 수 있는지.....참으로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생각을 하노라면, <산너울>이 의미있는 시도라는 생각은 하면서도 정작으로는 마음 맞는 사람끼리 이웃한 값비싸고 허름한 주말별장화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들곤 한다.

세월의 힘!

2009/06/13 14:58

언뜻 보았을 때는 무척 일상적이고 사소해보이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엄청난 것들을 종종 발견한다. 세월의 흔적이 적층되어 보여지는 것들 역시 바로 이와 같은 종류의 것들인데 존재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내공과 포스를 뿜어낸다.

이른 저녁식사 후 동네 산책을 했다.

태양은 누런 석양을 끌며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고, 먹이사냥을 끝낸 새들도 이미 저마다의 둥지로 날아가버려 들판은 휴식을 준비하는 듯 차분해 보인다. 미처 주인이 집으로 데려가지 않은, 방금 코뚜레를 꿴 듯 빨간 새 코뚜레를 코에 건 미처 덜자란 송아지도 개울가에서 허겁지겁 저녁식사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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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지는 언제나 정겨움의 대상이다. 오랜만에 본 코뚜레를 한 송아지

시골 어느 동네나 있음직한 커다란 느티나무도 여럿 보이고 숲 가장자리 밤나무들은 훤한 밤꽃을 활짝 피웠다.

용암천이라 불리는 개울 건너 이 동네 랜드마크 쯤으로 여겨지는 커다란 느티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충주시 보호수로 수령이 300년 넘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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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봐도 단연 돋보이는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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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보니 더욱 그럴싸 하다

커다란 느티나무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주변을 살펴보던 중 강력한 포스를 느낄 수 있었다. 이른바 내공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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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공이 느껴지는가?

느티나무의 압도적인 크기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아래 놓인 채 세월의 힘과 압력을 고스란히 받으며 자신의 존재를 묵묵히 드러내는 작은 돌덩이의 존재였다. 높은 느티나무 가지로부터 떨어져내린 물방울에 깊게 파인 세월의 흔적은 많은 생각의 꼬투리가 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PC를 켜자 마침 광동제약을 대상으로 한 불매운동에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달성한 언소주가 삼성그룹 5개사를 대상으로 불매운동에 돌입한다는 소식이다.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증권 그리고 에버랜드.....삼성의 여러 계열사 중 소비재 중심의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우선적으로 선정한 모양이다.

언소주의 선언은 이미 거대 권력이 되어버린 삼성그룹에 대한 다윗의 도전이다. 삼성의 부도덕성이야 이미 전국민이 알고 있는 바이고 진작부터 삼성 제품에는 눈길도 보내지 않던 터지만, 아무튼 언소주는 이제는 행동할 때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사회에 공표하며 스스로 트리거를 당긴 셈이고 향후 조중동을 앞세운 삼성의 난폭한 대응에 언소주가 무사해야할텐데 싶은 생각 뿐이다.

느티나무에서 떨어진 작은 물방울이 바위에 커다랗고 뚜렷한 흔적을 남기고 마침내 바위돌을 갈라 깨뜨려버리듯 이 작은 움직임이 커다란 함성되어 사방에 울려퍼질 것을 의심치 않는다.

너를 환영해!!!

2009/06/09 23:30

숫컷 강아지가 왔다. 08년 2월생............그런데 강아지가 아니라 커다란 개다. 16개월인데 이미 성견이다.

앳되고 귀여운 모습은 이미 간데없고 오히려 늠름 듬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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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아이가 매력적인 당당한 녀석

떠나온 곳에 대한 향수 때문인지 꼬박 하루는 의기소침하다가 다음날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 펄펄 날아다닌다.

보더콜리............『아기돼지 베이브』에 출현한 양몰이개와 동일한 견종이다.

원래부터 활발한 성격이라 거침이 없다. 항상 사람 곁에 바짝 붙어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애교도 꽤 있는 편이고 대단히 영리하다. 흠이라면 사람을 너무 좋아하고 뭐든지 움직이는 것이 보이면 쏜살같이 쫓아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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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랄 데 없이 균형잡힌 체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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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반던지기 하자고 원반을 물고 왔다

어제는 산책 중 야생고양이 한마리를 만났는데 뭐라 말릴 겨를도 없이 좇아갔다. 이리저리 몰다가 놓쳤는지 터덜터덜 돌아왔는데, 이러다 온동네 가축들을 몰고 다니는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