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5월이 지나고 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지만 대학 이후 5월은 더 이상 여왕처럼 찬란하지 않았고 오히려 처연하고 가슴 아픈 계절이었다. 더군다나 2년 전 노무현, 김대중 두 분 대통령이 돌아가신 이후, 5월은 더더욱 서러운 계절이 되고 있다.
작년에도 비가 내리시더니 올해 5월 23일에도 또 비가 내렸다. 서울은 그저 잔뜩 지푸린 잿빛 하늘이었지만 노무현 대통령 누워계신 그 곳엔 비가 주륵주륵 내리고 있었다. 작년 기일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역시 홀로 봉하에 다녀왔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그 분 생각을 할 수 있어서 혼자 가는 편이 훨씬 좋다는 생각이다.
출근길의 혼잡을 피해 9시 무렵 분당을 나섰다. 하늘은 잔뜩 흐린 상태였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분당에서 광역직행버스를 타고 서울역에서 밀양행 KTX로 갈아탔다. 밀양을 스쳐지난 적은 있었지만 몸을 내린 것은 처음이었다.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서 보았듯 실제의 밀양은 추레하였고 햇빛 대신 비가 내리는 통에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밀양역 앞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밀양시외버스터미널로 갔다. 좁은 길 양편으로 익숙한 브랜드의 대리점들이 보였다. 지방경제는 전혀 자생력이 없는 일종의 대리점 경제라고 했던 어느 선배의 말이 생각났다. 제주시에 이마트가 들어서자 서귀포의 구멍가게까지 휘청이더라는 제주은행장의 말도 생각났다. 지방은 서울의 브랜드를 팔아 얼마되지도 않는 푼돈을 챙기고 오히려 골수가 빨리는 형국이다. 그것도 모르고 좋다고 한다. 답답한 일이다.
여느 지방도시의 터미널과 마찬가지로 후줄그레한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조금 전 봉하행 버스가 출발했단다. 1시간 20분 이상을 기다려야만 한다. 후줄그레함은 모든 시외버스터미널의 운명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터미널에서 조금 떨어진 후미진 칼국수집에서 삼천원짜리 맛없는 칼국수를 뱃속으로 집어넣는다. 칼국수와 수제비 그리고 칼제비 - 준비된 메뉴는 이것 뿐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다. 가격이 싸지만 맛은 없다. 가격과 맛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 것 같지는 않고 그저 솜씨가 없는 것이다. 점심시간이 지난 탓인지 2개의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은 손님들이 맛없는 칼국수를 맛있게 먹고 있다. 대강 허기를 때운 뒤 우산을 받쳐들고 밀양의 후줄그레한 골목길을 어슬렁거린다. 버스 시간은 아직도 40분 넘게 남았다. 시간을 때울 요량으로 터미널 근처 다방으로 들어선다. 전형적인 터미널 부근 다방의 풍경인데 실내는 허름을 지나 남루에 가깝다. 인테리어랄 것도 없는 조악한 분위기의 다방에서 환갑은 넘어뵈는 노파가 노인과 노닥거리고 있다. 오래되어 군데군데 벗겨친 페인트 자국처럼 버얼건 립스틱을 대충 칠한 또 다른 노파가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 삐그덕거리는 테이블 위에 걸쭉한 커피를 내려놓는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고 다행스럽게도 버스는 제 시간에 출발하여 좁다란 도로를 달려 진영역 앞에 닿는다. 3시 30분. 시간이 부족하여 택시를 집어타고 봉하마을로 향한다. 봉하마을로 이어진 좁은 길 양편으로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받쳐든 참배객들이 추적추적 걸어나오고 있다. 무언가 결연한 눈빛 속에서 기쁨과 슬픔이 아스라히 녹아있음을 본다.
봉하마을 초입에서 택시를 멈춘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고 그 빗속에 저들이 악의에 차 지껄였던 "아방궁"이 보인다. 문득 다시 가슴이 먹먹해온다.

이 먹먹함은 봉하를 떠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새롭게 단장한 생가를 일별하고 곧장 노통을 뵈러 간다. 여전히 참배객들은 많다. 묘소 주위는 작년과 달리 깨끗하게 단장되어있어 그나마 다소 위안이 된다. 마을 초입에서 사들고 간 하얀 국화꽃을 올리고 배례를 한다. 문득 눈 앞이 자욱해온다. 저 세상에서는 편안하시겠죠? 뵙고 싶습니다. 배례를 마치고 서둘러 묘소를 빠져나온다. 묘소 주변에 깔린 박석에 새겨진 글귀를 보자니 저절로 눈물이 난다. 뒤편으로 부엉이 바위도 보이고 그 주위를 여러명이 서성이고 있다. 비가 내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묘소를 벗어나 길건너 기념관으로 향한다. 기념관 앞 마당 대통령의 행적을 기록한 사진들이 연대기순으로 정리된 채 비를 맞고 있다. 벌개진 눈시울로 참배객들이 사진들을 둘러보고 있다. 기념관 안 정면에는 넉넉하고 인자한 모습의 대통령 동상이 팔을 벌려고 선듯한 모습이다. 그 동상 뒤 휘장 사이로 스며든 빛이 마치 후광처럼 비추고 있다.

동상 앙편으로는 각각 영상상영관과 그분의 손때묻은 유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상영관에서는 관련 동영상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참배객들은 소리죽여 흐느끼고 있었다. 가슴이 아파 조금밖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 반대편 유품전시실의 여러 유퓸 중에는 손녀를 태우고 달리던 그 자전거에 유독 눈길이 갔다. 바보처럼 눈물이 쏟아져 유품도 제대로 못보고 황급히 기념관을 빠져나왔다.
마을회관 앞에서 내리는 비와 여전히 많은 참배객을 바라보며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스스로 속한 분야에서 "사람사는 세상"만들기에 각자 진력하라는 대통령의 메시지가 새삼 마음 가득 차오른다. 당신은 당신의 길을 갔듯 나 역시 나의 길을 간다. 그리고 시냇물이 마침내 바다에서 만나듯 우리는 더 넓은 세상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그 만남에서 나 역시 그분만큼 당당했으면 한다.
봉하마을에서 입구의 공단까지 많은 참배객 사이에 끼여 비를 맞으며 걸어내려왔다. 내년 다시 뵙기를 소망한다. 공단 한켠 버스정거장에서 대구에서 왔다는 젊은 대학생과 함께 진영역 행 버스를 기다린다. 전날부터 밤을 꼬박새우며 자원봉사를 했다는 그 청년의 어깨에는 어떤 피로감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서글서글하고 착한 눈매가 오랫동안 기억날 듯 하다. 미처 미룰 수 없었던 늦은 약속때문에 서울로 돌아갈 발길은 바쁜데 버스는 꽤 오랫동안 오지 않고 있다. 할 수 없이 마침 진영에서 회차하는 택시를 집어탔다. 대구로 가기 위해 진영역으로 간다는 청년을 내려주고 택시는 김해공항을 향한다. 청년은 자꾸만 택시비를 보태주려고 했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때 달라고 했다.
김해공항에 도착하니 비가 서서히 그치기 시작했고 짧은 비행 후 내린 김포공항 위 하늘은 거짓말처럼 맑았다.

그가 몹시 그립고 보고 싶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지만 대학 이후 5월은 더 이상 여왕처럼 찬란하지 않았고 오히려 처연하고 가슴 아픈 계절이었다. 더군다나 2년 전 노무현, 김대중 두 분 대통령이 돌아가신 이후, 5월은 더더욱 서러운 계절이 되고 있다.
작년에도 비가 내리시더니 올해 5월 23일에도 또 비가 내렸다. 서울은 그저 잔뜩 지푸린 잿빛 하늘이었지만 노무현 대통령 누워계신 그 곳엔 비가 주륵주륵 내리고 있었다. 작년 기일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역시 홀로 봉하에 다녀왔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그 분 생각을 할 수 있어서 혼자 가는 편이 훨씬 좋다는 생각이다.
출근길의 혼잡을 피해 9시 무렵 분당을 나섰다. 하늘은 잔뜩 흐린 상태였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분당에서 광역직행버스를 타고 서울역에서 밀양행 KTX로 갈아탔다. 밀양을 스쳐지난 적은 있었지만 몸을 내린 것은 처음이었다.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서 보았듯 실제의 밀양은 추레하였고 햇빛 대신 비가 내리는 통에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밀양역 앞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밀양시외버스터미널로 갔다. 좁은 길 양편으로 익숙한 브랜드의 대리점들이 보였다. 지방경제는 전혀 자생력이 없는 일종의 대리점 경제라고 했던 어느 선배의 말이 생각났다. 제주시에 이마트가 들어서자 서귀포의 구멍가게까지 휘청이더라는 제주은행장의 말도 생각났다. 지방은 서울의 브랜드를 팔아 얼마되지도 않는 푼돈을 챙기고 오히려 골수가 빨리는 형국이다. 그것도 모르고 좋다고 한다. 답답한 일이다.
여느 지방도시의 터미널과 마찬가지로 후줄그레한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조금 전 봉하행 버스가 출발했단다. 1시간 20분 이상을 기다려야만 한다. 후줄그레함은 모든 시외버스터미널의 운명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터미널에서 조금 떨어진 후미진 칼국수집에서 삼천원짜리 맛없는 칼국수를 뱃속으로 집어넣는다. 칼국수와 수제비 그리고 칼제비 - 준비된 메뉴는 이것 뿐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다. 가격이 싸지만 맛은 없다. 가격과 맛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 것 같지는 않고 그저 솜씨가 없는 것이다. 점심시간이 지난 탓인지 2개의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은 손님들이 맛없는 칼국수를 맛있게 먹고 있다. 대강 허기를 때운 뒤 우산을 받쳐들고 밀양의 후줄그레한 골목길을 어슬렁거린다. 버스 시간은 아직도 40분 넘게 남았다. 시간을 때울 요량으로 터미널 근처 다방으로 들어선다. 전형적인 터미널 부근 다방의 풍경인데 실내는 허름을 지나 남루에 가깝다. 인테리어랄 것도 없는 조악한 분위기의 다방에서 환갑은 넘어뵈는 노파가 노인과 노닥거리고 있다. 오래되어 군데군데 벗겨친 페인트 자국처럼 버얼건 립스틱을 대충 칠한 또 다른 노파가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 삐그덕거리는 테이블 위에 걸쭉한 커피를 내려놓는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고 다행스럽게도 버스는 제 시간에 출발하여 좁다란 도로를 달려 진영역 앞에 닿는다. 3시 30분. 시간이 부족하여 택시를 집어타고 봉하마을로 향한다. 봉하마을로 이어진 좁은 길 양편으로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받쳐든 참배객들이 추적추적 걸어나오고 있다. 무언가 결연한 눈빛 속에서 기쁨과 슬픔이 아스라히 녹아있음을 본다.
봉하마을 초입에서 택시를 멈춘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고 그 빗속에 저들이 악의에 차 지껄였던 "아방궁"이 보인다. 문득 다시 가슴이 먹먹해온다.

이 먹먹함은 봉하를 떠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새롭게 단장한 생가를 일별하고 곧장 노통을 뵈러 간다. 여전히 참배객들은 많다. 묘소 주위는 작년과 달리 깨끗하게 단장되어있어 그나마 다소 위안이 된다. 마을 초입에서 사들고 간 하얀 국화꽃을 올리고 배례를 한다. 문득 눈 앞이 자욱해온다. 저 세상에서는 편안하시겠죠? 뵙고 싶습니다. 배례를 마치고 서둘러 묘소를 빠져나온다. 묘소 주변에 깔린 박석에 새겨진 글귀를 보자니 저절로 눈물이 난다. 뒤편으로 부엉이 바위도 보이고 그 주위를 여러명이 서성이고 있다. 비가 내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묘소를 벗어나 길건너 기념관으로 향한다. 기념관 앞 마당 대통령의 행적을 기록한 사진들이 연대기순으로 정리된 채 비를 맞고 있다. 벌개진 눈시울로 참배객들이 사진들을 둘러보고 있다. 기념관 안 정면에는 넉넉하고 인자한 모습의 대통령 동상이 팔을 벌려고 선듯한 모습이다. 그 동상 뒤 휘장 사이로 스며든 빛이 마치 후광처럼 비추고 있다.

동상 앙편으로는 각각 영상상영관과 그분의 손때묻은 유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상영관에서는 관련 동영상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참배객들은 소리죽여 흐느끼고 있었다. 가슴이 아파 조금밖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 반대편 유품전시실의 여러 유퓸 중에는 손녀를 태우고 달리던 그 자전거에 유독 눈길이 갔다. 바보처럼 눈물이 쏟아져 유품도 제대로 못보고 황급히 기념관을 빠져나왔다.
마을회관 앞에서 내리는 비와 여전히 많은 참배객을 바라보며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스스로 속한 분야에서 "사람사는 세상"만들기에 각자 진력하라는 대통령의 메시지가 새삼 마음 가득 차오른다. 당신은 당신의 길을 갔듯 나 역시 나의 길을 간다. 그리고 시냇물이 마침내 바다에서 만나듯 우리는 더 넓은 세상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그 만남에서 나 역시 그분만큼 당당했으면 한다.
봉하마을에서 입구의 공단까지 많은 참배객 사이에 끼여 비를 맞으며 걸어내려왔다. 내년 다시 뵙기를 소망한다. 공단 한켠 버스정거장에서 대구에서 왔다는 젊은 대학생과 함께 진영역 행 버스를 기다린다. 전날부터 밤을 꼬박새우며 자원봉사를 했다는 그 청년의 어깨에는 어떤 피로감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서글서글하고 착한 눈매가 오랫동안 기억날 듯 하다. 미처 미룰 수 없었던 늦은 약속때문에 서울로 돌아갈 발길은 바쁜데 버스는 꽤 오랫동안 오지 않고 있다. 할 수 없이 마침 진영에서 회차하는 택시를 집어탔다. 대구로 가기 위해 진영역으로 간다는 청년을 내려주고 택시는 김해공항을 향한다. 청년은 자꾸만 택시비를 보태주려고 했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때 달라고 했다.
김해공항에 도착하니 비가 서서히 그치기 시작했고 짧은 비행 후 내린 김포공항 위 하늘은 거짓말처럼 맑았다.

그가 몹시 그립고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