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세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지나간 시간' 즉 '잃어버린 기회'이고 둘째는 "시위를 떠나버린 화살"이며, 마지막 하나는 바로 "내뱉어버린 말"인데, 그 중 가장 무섭고 결정적인 것은 다름아닌 <혀>가 만들어내는 말이다"라는 옛말이 있다. 많은 부분에 있어서 엄정했던 고대 로마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조상들 역시 식언(食言)을 하는 사람을 소인배로 치부하여 멀리하고 각별히 설화(舌禍)를 경계한 바 있다.
며칠 전 추석을 즈음하여 '추석맞이 특별 기획 이명박 대통령과의 대화'라는 좌담회가 생방송되었다. 새로운 국정운영 기조인 "공생발전"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을 듣는 자리였다. 취임 이래, 대통령의 국정기조를 <4대강 개발> 혹은 <한반도 대운하>로 잘못 알고 있는 일부 몰지각한 국민들을 일깨우기 위한 개념찬 자리였음은 두 말 할 나위도 없다.
금번 생방송 좌담회가 예고되자 일부 무책임하고 시니컬한 누리꾼들이, "대통령의 혀가 독사의 그것처럼 날름거려서 정신이 산만해져 도저히 집중이 안된다"는 불평을 쏟아냈지만, 그저 눈을 감고 그 내용에만 집중하면 될 일인데, 이것을 가지고 트윗을 통해 "대통령이 좌담회 내내 몇 번 혀를 날름거릴까?" 따위 댓글놀이를 하는 것을 보면 한심한 노릇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애플에게 월드와이드 수모를 겪고 있는 국민기업 삼성전자에서 보듯 하드웨어의 성능이 문제가 아니라 결국 소프트웨어가 관건이라는 현재의 트렌드와도 상당한 괴리감이 있는 것으로, 날름거리는 혀가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그 혀를 통하여 전달하려는 그 내용이 더욱 중요할진대 이같은 대통령의 진정성을 간단히 무시해버리는 폭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혀가 몇번 날름거렸는지 그 결과와 집계가 조금 궁금하기는 하다)

반면에 조금 더 생각이 있는 누리꾼은 십이간지(十二干支)에 기대어 대통령이 1941년 생 뱀띠이므로 이 혓바닥 낼름거림은 일견 당연한 것이라고 옹호하기도 한다. 뱀띠에 해당하는 모든 인류가 말할 때 다들 혓바닥을 낼름거려야만 한다는 일반화의 오류만 극복한다면 꽤 독창적이고 설득력이 있는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입술에 침도 안바르고 거짓말한다"는 속담에 기대어 대통령을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이기도 하는 모양인데 사실 따지고 보면 대통령이 말할 때 입술에 침을 바르는 게 아니라 입 양쪽 가장자리를 혀 끝으로 핧아낸다고 할 수 있으니 이는 침을 바른다는 것과는 엄연히 다른 상황이다.
혓바닥 날름거림과 함께 대통령에 대한 시덥잖은 이야기 중, 식언을 일삼는 대통령, 며칠 전 얘기와 오늘의 얘기가 다른 거짓말쟁이 대통령이라고 온라인 상에서 말들이 많은데, 이것은 복잡한 문제만 생기면 이를 모면하려 해외로 출장간다는 헛소리와 동일한 범주일 것이며 따라서 반박 역시 동일한 것일 수 밖에 없으리라.
며칠 사이에 말이 달라 보이는 것은 며칠 전의 상황과 오늘의 상황이 현저하게 다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처세술의 황제라고 할 "상황논리"라고 하거니와 이와 유사한 경우를,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에 의해 드러난, 위대한 민족지로 자칭하는 조선일보의 창업주 "방응모"와 의대생 성폭행으로 사단이 난 고려대와 동아일보를 설립한 "김성수"의 친일행위에 대한 스스로의 항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제가 그토록 쉽게 무너질 줄 몰랐(최남선)"기에 벌어진 사단이며, 오히려 "민족을 위한 부득이한 친일(이광수)"이었다는 저들의 항변을 우리는 어느 정도 이해해 주어야만 한다. 물론 시종일관 한결같았던 김구나 간디의 예를 들며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요컨대 난세에는 난세를 극복하는 논리가 따로 있는 것이다.
무주택자로 주택가격이 상승할까 싶어 노심초사하던 우리가 떡하니 주택을 한 채 마련한 뒤 주택가격이 왜이리 안오르냐며 볼멘소리를 하는 것과 똑같이 대통령 역시 상황논리에 의해 충실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돌출상황을 회피하려 해외순방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고달픈 해외순방 중에 하필 국내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를 오비이락 혹은 머피의 법칙이라고 하거니와 세상에는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 있는 것처럼 희한하게 우연발생 확률을 높이는 사람 역시 있는 것이다.
다시 '혀'로 돌아가서, 혀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대통령의 실눈에 대해서도 말이 많은 듯 하다. 김홍도 화백의 많은 풍속화에도 보이듯 대통령의 실눈은 사실 우리 고유의 유전자에 충실한 모양새라고 할 수 있다. 그 눈 매무새를 두고서 일부에서 "뱀눈"이니 "쥐새끼 눈"이니 하는 험한 인신공격성 멘션을 다는데, 잿빛 시궁창 쥐새끼를 잡아올려 눈을 가까이 대고 쥐새끼 눈을 가만히 살펴본 적이 없는 사람은 단연코 그 따위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할 것이다. 쥐새끼 눈이 얼마나 귀엽고 심지어 명민해보이기까지 하는지 쥐새끼와 눈높이를 맞추어 본 사람은 모두들 동의하는 사실이다. 신화 혹은 전설 속 "십이간지 순서정하기 선착순 게임"에서 우벙한 황소(축)가 생쥐(자)에게 No.1 자리를 내주고 만 것은 기실 생쥐의 똘망똘망하고 명민한 눈동자에 홀랑 속아넘어간 것이 아닌가 한다.
너무 자연스럽게 속아넘어가서 우리 스스로도 속았다는 생각 조차 못하고 있는 것 중 가장 딱한 것은 바로 예수님의 얼굴이다. 냉철하기 그지없는 BBC의 다큐멘터리는, 신약성서의 주인공인 예수님은 사실 영화 (Jesus Christ Superstar 혹은 Passion of Christ)나 각종 성화에서 보듯 훤칠하고 잘생긴 앵글로색슨 족 젊은이의 모습이 아니라 유태인이 인종 상 코카소이드 셈족이었으므로 다소 까무잡잡하고 동글동글한 모습에 키가 작았을 (155cm 정도가 당시 유태인의 평균키) 것이고, 직업이 목수였으므로 다부진 체격이었다고 주장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후리후리한 영화배우 스타일이 아니라 마당쇠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열렬한 크리스트교 신자들은 배우처럼 잘생긴 예수님 성화에 속는 것을 그만두고 보다 친근하고 유쾌하고 현실감있는 성화를 만들어 기도할 때마다 들여다보는 것이 마땅하리라.
어쨌든 추석 즈음 대통령은 임기말을 추동할 국정기조를 공중파 3사를 통하여 생방송 형식으로 발표하였는데 우리 모두는 "대통령 혓바닥 날림거림 횟수"나 "대통령 혓바닥이 입술을 핥고 지나갈 때의 속도 계산" 따위 이상한 작태를 멈추고 국민된 도리로 대통령의 진정성을 수용해야만 한다.
며칠 전 추석을 즈음하여 '추석맞이 특별 기획 이명박 대통령과의 대화'라는 좌담회가 생방송되었다. 새로운 국정운영 기조인 "공생발전"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을 듣는 자리였다. 취임 이래, 대통령의 국정기조를 <4대강 개발> 혹은 <한반도 대운하>로 잘못 알고 있는 일부 몰지각한 국민들을 일깨우기 위한 개념찬 자리였음은 두 말 할 나위도 없다.
금번 생방송 좌담회가 예고되자 일부 무책임하고 시니컬한 누리꾼들이, "대통령의 혀가 독사의 그것처럼 날름거려서 정신이 산만해져 도저히 집중이 안된다"는 불평을 쏟아냈지만, 그저 눈을 감고 그 내용에만 집중하면 될 일인데, 이것을 가지고 트윗을 통해 "대통령이 좌담회 내내 몇 번 혀를 날름거릴까?" 따위 댓글놀이를 하는 것을 보면 한심한 노릇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애플에게 월드와이드 수모를 겪고 있는 국민기업 삼성전자에서 보듯 하드웨어의 성능이 문제가 아니라 결국 소프트웨어가 관건이라는 현재의 트렌드와도 상당한 괴리감이 있는 것으로, 날름거리는 혀가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그 혀를 통하여 전달하려는 그 내용이 더욱 중요할진대 이같은 대통령의 진정성을 간단히 무시해버리는 폭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혀가 몇번 날름거렸는지 그 결과와 집계가 조금 궁금하기는 하다)

반면에 조금 더 생각이 있는 누리꾼은 십이간지(十二干支)에 기대어 대통령이 1941년 생 뱀띠이므로 이 혓바닥 낼름거림은 일견 당연한 것이라고 옹호하기도 한다. 뱀띠에 해당하는 모든 인류가 말할 때 다들 혓바닥을 낼름거려야만 한다는 일반화의 오류만 극복한다면 꽤 독창적이고 설득력이 있는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입술에 침도 안바르고 거짓말한다"는 속담에 기대어 대통령을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이기도 하는 모양인데 사실 따지고 보면 대통령이 말할 때 입술에 침을 바르는 게 아니라 입 양쪽 가장자리를 혀 끝으로 핧아낸다고 할 수 있으니 이는 침을 바른다는 것과는 엄연히 다른 상황이다.
혓바닥 날름거림과 함께 대통령에 대한 시덥잖은 이야기 중, 식언을 일삼는 대통령, 며칠 전 얘기와 오늘의 얘기가 다른 거짓말쟁이 대통령이라고 온라인 상에서 말들이 많은데, 이것은 복잡한 문제만 생기면 이를 모면하려 해외로 출장간다는 헛소리와 동일한 범주일 것이며 따라서 반박 역시 동일한 것일 수 밖에 없으리라.
며칠 사이에 말이 달라 보이는 것은 며칠 전의 상황과 오늘의 상황이 현저하게 다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처세술의 황제라고 할 "상황논리"라고 하거니와 이와 유사한 경우를,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에 의해 드러난, 위대한 민족지로 자칭하는 조선일보의 창업주 "방응모"와 의대생 성폭행으로 사단이 난 고려대와 동아일보를 설립한 "김성수"의 친일행위에 대한 스스로의 항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제가 그토록 쉽게 무너질 줄 몰랐(최남선)"기에 벌어진 사단이며, 오히려 "민족을 위한 부득이한 친일(이광수)"이었다는 저들의 항변을 우리는 어느 정도 이해해 주어야만 한다. 물론 시종일관 한결같았던 김구나 간디의 예를 들며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요컨대 난세에는 난세를 극복하는 논리가 따로 있는 것이다.
무주택자로 주택가격이 상승할까 싶어 노심초사하던 우리가 떡하니 주택을 한 채 마련한 뒤 주택가격이 왜이리 안오르냐며 볼멘소리를 하는 것과 똑같이 대통령 역시 상황논리에 의해 충실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돌출상황을 회피하려 해외순방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고달픈 해외순방 중에 하필 국내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를 오비이락 혹은 머피의 법칙이라고 하거니와 세상에는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 있는 것처럼 희한하게 우연발생 확률을 높이는 사람 역시 있는 것이다.
다시 '혀'로 돌아가서, 혀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대통령의 실눈에 대해서도 말이 많은 듯 하다. 김홍도 화백의 많은 풍속화에도 보이듯 대통령의 실눈은 사실 우리 고유의 유전자에 충실한 모양새라고 할 수 있다. 그 눈 매무새를 두고서 일부에서 "뱀눈"이니 "쥐새끼 눈"이니 하는 험한 인신공격성 멘션을 다는데, 잿빛 시궁창 쥐새끼를 잡아올려 눈을 가까이 대고 쥐새끼 눈을 가만히 살펴본 적이 없는 사람은 단연코 그 따위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할 것이다. 쥐새끼 눈이 얼마나 귀엽고 심지어 명민해보이기까지 하는지 쥐새끼와 눈높이를 맞추어 본 사람은 모두들 동의하는 사실이다. 신화 혹은 전설 속 "십이간지 순서정하기 선착순 게임"에서 우벙한 황소(축)가 생쥐(자)에게 No.1 자리를 내주고 만 것은 기실 생쥐의 똘망똘망하고 명민한 눈동자에 홀랑 속아넘어간 것이 아닌가 한다.
너무 자연스럽게 속아넘어가서 우리 스스로도 속았다는 생각 조차 못하고 있는 것 중 가장 딱한 것은 바로 예수님의 얼굴이다. 냉철하기 그지없는 BBC의 다큐멘터리는, 신약성서의 주인공인 예수님은 사실 영화 (Jesus Christ Superstar 혹은 Passion of Christ)나 각종 성화에서 보듯 훤칠하고 잘생긴 앵글로색슨 족 젊은이의 모습이 아니라 유태인이 인종 상 코카소이드 셈족이었으므로 다소 까무잡잡하고 동글동글한 모습에 키가 작았을 (155cm 정도가 당시 유태인의 평균키) 것이고, 직업이 목수였으므로 다부진 체격이었다고 주장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후리후리한 영화배우 스타일이 아니라 마당쇠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열렬한 크리스트교 신자들은 배우처럼 잘생긴 예수님 성화에 속는 것을 그만두고 보다 친근하고 유쾌하고 현실감있는 성화를 만들어 기도할 때마다 들여다보는 것이 마땅하리라.
![]() Passion of Christ | ![]() Jesus Christ Superstar | ![]() BBC에 의한 추정복원 |
어쨌든 추석 즈음 대통령은 임기말을 추동할 국정기조를 공중파 3사를 통하여 생방송 형식으로 발표하였는데 우리 모두는 "대통령 혓바닥 날림거림 횟수"나 "대통령 혓바닥이 입술을 핥고 지나갈 때의 속도 계산" 따위 이상한 작태를 멈추고 국민된 도리로 대통령의 진정성을 수용해야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