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종류든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은 - 나이가 많든 적든, 경험이 다양하든 일천하든, 돈이 많든 적든 -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스스로 발 딛고 있는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완전히 다른 세계관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가는 것은 더더욱 커다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대한민국에 남자, 여자, 아줌마라는 세 개의 gender가 존재한다는 그 농담의 프레임을 빌어 이야기하자면, 대한민국에는 서울과 시골이라는 단 두 개의 지역적인 범주만 존재할 뿐이다.
시골 사람 입장에서 듣기에는 사뭇 거북한 일이지만, 서울 사람에게 서울 이외의 곳은 모두 "시골"일 뿐이다. 대한민국에서 두번째로 커다란 도시인 부산도 서울 사람들에게는 그저 조금 큰 시골일 뿐이다.
여기에 덧붙여 서울을 생활 혹은 생업의 근거로 삼고있는 수도권 주민들 역시 확대된 서울시민의식을 공유하고 있음을 볼 때, 이들까지 서울의 범주로 포함한다면 그야말로 대한민국은 서울과 시골로 나뉠 수 밖에 없다.
또한 서울 사람들에 의해 시골 사람으로 칭해지고 있는 사람들 역시 동일한 의식을 가진게 아닌가 라고 의심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들 또한 <서울로 간다> 혹은 <서울에서 온다>라는 표현 대신 <서울에 올라간다> 혹은 <서울에서 내려온다> 라는 표현을 전혀 거리낌없이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아무튼 서울의 매몰찬 사고방식이나 소비적인 문화에 길들여진 이들에게 시골은 어떤 의미에서 동경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자동차를 타고 스쳐 지나거나 잠깐 머무를 때 시골은 막연한 동경의 대상 그것이고 수채화를 바라보듯 지극히 평화롭고 목가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서울의 삶을 접고 시골에서 새 삶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그곳은 전혀 다른 세계관이 지배하는 완전히 다른 세상일 수 밖에 없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 언어는 서울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서울에서는 이미 화석화한 위계질서도 있고, 서울에는 없는 사소한 형태의 권력 관계가 시골 생활 깊숙히 영향력을 발휘하곤 하며 그러기에 심지어 외국보다도 더욱 낯선 곳이라는 불평도 간혹 접하게 된다.
1998년 IMF 환란이 야기한 경제적 공황은 서울에서 시골로의 귀농을 강제한 바 있다. 이로부터 시작된 귀농의 움직임은 처음 경제적 원인의 귀농에서 차츰 문화적 귀농이 혼재하는 형태로 진행되었으며, 향후 생태적 원인의 귀농이 되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또한 이제 대한민국의 성장동력원으로서 서울의 잠재력은 이미 고갈되었고 이를 대체할 곳은 오직 시골 밖에 없다는 주장도 있다. 서울의 과밀한 인구가 초래하는 온갖 사회적 경제적 부작용을 떠올려 볼 때 그러한 주장이 일면 타당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와 같은 주장을 전폭적으로 수용하고 시골행을 결심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도대체 시골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며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고 무엇으로 아이들을 교육시킬 것인가 하는 현실적인 문제 말이다. 먹고 입고 자는 현실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면 먼저 비웃기부터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자아의 고양, 사회에의 관심 혹은 문화의 생산 같은 고차원적이고 궁극적인 활동이 왕성하게 이루어졌음을 역사는 이미 증명하고 있다. 고대 로마와 그리스의 찬란한 문명 뒤에는 수많은 노예들의 비참한 삶이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결국 현실적인 문제로 돌아오고 마는데.....이 부분에 대한 모색이 절대적을 필요하다.
그리고 그 첫 단추를 끼운다.
